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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155일 - 주체탐구
by 신현동 on 15:54:30 in 일기
2020년 3월 14일 주제 : 주체 탐구 155일 오늘 느낀 것 : 전체주의 연습 전체주의를 하며 한 시간 가량 산책을 했다. 모든 공간, 느껴지는 모든 전체가 다 나 같았다. 내가 전체에 있는 것 같았고 또 한편으로는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희미해진 느낌이면서 모든 곳에 있는 느낌이 흥미로웠다. 그러다가 몸 느끼기를 했다. 그랬더니 지금 여기에서 땅에 닿아있는 발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이 땅위에 발 붙이고 있는 이 몸에 ‘내’가 있다고 여겨졌다. 즉 전체주의와 몸 느끼기가 대비되어서 내가 전체에도 있다가 이 몸에도 있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이렇게 ㅂ면 나는 어디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 세계가 내 마음의 세계이고 이 세계에서 나는 내 마음의 공간 전체에 있기도 하고 내 마음의 일부인 몸에만 있기도 한다. 나라는 느낌은 이렇게 이 곳 저 곳 어디에도 있을 수 있다. 예전에 저 멀리서 다른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에 주의를 보내 듣고, 느끼고 있는데, 문득 내가 저 쪽에 있다고 여겨졌었다. 그 때는 그 현상이 이해가 안갔는데, 이제 보니 주의가 많이 쏠린 쪽에 내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있다는 느낌은 주의가 많이 쏠려있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내가 있다는 느낌 = 주의의 쏠림이다. 즉 주의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서 내가 어디 있느냐가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다. 주의를 탐구해보면 처음엔 주의가 가 닿는 곳이 곧 의식하게 되는 곳이며, 느껴지는 것이며, 그것에 내 의시적 경험의 세계라고 여겨졌다. 주의가 닿지 않는 곳은 없는 세계이고 무언가 ‘있다’라는 것은 주의가 가 닿았다는 것이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이 대상을 비추듯이 인식이 없는 세계에서 주의가 비춰지면 인식을 생겨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주의는 인식의 빛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단순히 주의가 비춰지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주의가 어디에 쏠리느냐 어디에 뭉쳐지느냐 하는 문제로 넘어갈 수 있다. 즉 주의의 양적인 차원에서 보면 주의의 양이 많은 곳이 곧 내가 된다. 또 그곳이 주체가 된다. 따라서 나는 곧 주의의 양적인 집적이며, 주의가 많이 몰린 곳은 곧 내가 있는 곳이다. 주의의 양이 몰린 곳에 따라 ‘느껴지는 나’가 있는 곳이 결정된다. 지금 이 순간에는 몸에, 그 중에서도 머리 쪽에 주의가 많이 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힘들 때는 또 가슴이나 그 감정이 느껴지는 그 부위쪽에 내가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 ‘나’를 느끼는 주체는 어디있는지 알 수 없다. 오직 그 모든 것을 느끼는 바깥에 있다고 상정해둘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주체라는 것을 상정하는 것 자체가 전혀 느낄 수 없는데 오로지 느껴지는 대상을 통해서만 상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상정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삼분열과 이분열 관계를 오가면서 분명히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느껴지지 않는 주체가 어쨌거나 대상-느낌의 관계를 통해서 확인되었는데 그 주체를 넘는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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