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진선미:

한낮까지 추석이라 말하기가 무색하게 쨍쨍했는데 오후에 한바탕 소나기가 내렸다.

앵두관 책상에 앉아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동백나무에 맺힌 이슬이 햇빛을 받아 별처럼 반짝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1.

오늘 추석 제사를 지낸 후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선생님께 젠가와 하이쿠라는 두가지 보드게임을 할 것을 제안하셨다.

두 가지 게임을 하면서 오늘의 주제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젠가는 50여개의 나무 블록들을 3개씩 층층이 쌓아 안정된 구조의 직사각형으로 만들고 게임을 시작한다. 그 후 차례를 정해 번갈아가며 블록들을 하나씩 빼가면서 게임이 진행되는데 구조물을 무너뜨리는 사람이 진다.

오늘의 주제와 연관해서 우리는 나무블록이 만든 전체 구조물과 블록이 따로라고, 즉 개별체와 전체 형태가 딸로라고 인식하지만 사실 블록과 전체구조는 뗄 수 없는 하나임이 인식되었다.

게임의 룰로 보면, 나무블록이 만든 구조물을 하나의 우주로 본다면 각자의 나무블록이 자신의 제자리를 지킴으로써 안정된 구조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블록들을 하나씩 빼가면서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과 불안정이 시작된다.

블록을 하나씩 빼가면서 계속 힘의 균형이 바뀐다. 전체 구조의 안정을 위한 개별 블록의 위치는 그전에 어떤 블록이 빠져나갔는가에 따라 매번 실시간으로 바뀐다. 블록 하나하나의 제자리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다른 블록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고 한 개의 블록을 빼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체의 균형과 안정을 보아야 하는데, 나는 구조가 무너지고 안 무너지고는 복불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전체를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 블록 하나에만 집중했다. 총 세 번의 게임을 했는데 내가 두 번 다 졌다.

어제 선생님께 내가 일상에서 내면의 갈등으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이유 중 하나는 관계에서, 또는 일에서 내가 하는 행동이 옳은 것인지, 바른 것인지 항상 헷갈려서 그를 판단하기 위해 번민을 많이 한다고 말씀 드렸다.

오늘 젠가게임에서 보여진 나의 패턴처럼, 너무 나라는 개인에 치중에서 그 이익과 손해를 계산해가면서 갈등하기 때문에 헷갈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른 행동이란 것은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고 순간순간 나와 타인이 어떤 흐름에 있느냐에 따라, 그 전체를 고려하며 그때그때 바뀌는 유동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하이쿠 게임은 각 면마다 하나의 단어가 적혀있는 주사위를 던져서 그 낱말들을 선택하고 조합해가며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문장을 구성해가며 시를 쓰는 방식이었다.

하나의 단어에도 정해진 하나의 의미만 있지 않고 여러 느낌이 있는데 그 후에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기존 단어의 의미가 달라지고, 또 완전히 이질적인 단어가 조합되면서 너무 신선한 느낌이 나오기도 햇다.

각 단어가 이미 결정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단어와의 조합이나 순서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고 의미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오늘의 주제와 와닿았다. 살면서 어떤 경험을 했을 때 나쁘다고 생각했던 일이 시간이 지난 후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된 일이나, 행복했던 일이 나중에는 불행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 떠올라싸.

단어 큐브를 조합해서 세 개의 문장을 만든 후 그 문장을 또 전체 주제와 연결시켜 하나의 의미를 뽑아내야 했는데 각자 개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던 문장들이 하나의 주제를 향해 정렬됨으로써 개별적인 의미가 버려지는 대신 더 풍부하고 깊은 관점의 문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에서 어떤 개별체든 다 흐름 속에서 서로가 의미를 가지고 존재하며 유지되게 하는 것임을 느꼈다.

오늘의 감사: 한 번도 져본적이 없다는 젠가 게임을 하필 오늘따라 지셔서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와 와플을 사주신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