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진선미
미: 비가 온 후의 하늘. 푸르른 하늘 위로 먹구름과 하얀 구름이 겹쳐져 아름답게 보였다.
-오늘의 주제: 알아차림 의식하기
느낌과 함께 알아차림이 의식 되는 것 같으면서도 뚜렷하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것에 대해 선생님께서 원래 앎 그 자체는 경계도, 형태도, 색도 없기에 컵을 느끼는 것처럼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다 갑자기 연필이 떨어져서 그걸 줍는데 온 주의가 쏠리며 다시 알아차림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로 들어갔다. 그때 선생님께서 지금 알아차림이 의식되니? 알아차림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랑 어떤 것이 다르지? 라고 질문해주셨다. 그러니 그 차이가 의식되었다. 연필이 굴러갈때는 연필만 마음 안에 있었는데 알아차림을 의식하면 연필만 있던 마음에 틈이 생긴것 같은 느낌이었다. 선생님께서 알아차림을 잊은, 혹은 모르는 상태와 알아차림을 아는, 의식하는 상태가 분별된다는 것은 알아차림을 잊은 상태에도 비개인적 주체가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순간 순간 지금의 나는 무엇으로 있는지 질문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오늘은 알아차림을 잊고 동일시된 상태에서 알아차림을 의식하는 상태로 전환되는 과정을 살피면서 그 차이를 조금 더 알고 싶었다.
이후에 청향관쪽으로 걷다가 동일시 된 상태에서 알아차림을 의식하게 되었다. 바깥 풍경이 실체를 지닌 것처럼 다가오다가 그 순간 전환되며 느낌으로 의식되었다.
저녁에 선생님과 문답하다가 왜 동일시에 빠지게 되는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때 선생님께서 동일시에 빠지는 것은 누구일까?라고 물어주셨다. 생각해보니 정말 의문이었다. 비개인적 주체가 과연 동일시에 빠질까? 동일시에 빠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특정한 느낌을 나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순수의식이 어떤 특정한 느낌을 나라고 여길까? 개인성 없는 알아차림이 경계를 지으며 어떤 것은 나라고 여기고 어떤 것은 내가 아니라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일시에 빠지는 것은 개인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렇다면 그 개인성이라는 건 무엇일까? 경계짓고 분별하는 것 또한 의식-앎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순수의식이 없다면 개인성 또한 없다. 다양한 색깔과 형태와 경계들이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그것이 의식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동일시에 빠지고 누가 동일시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어쩌면 진실 안에선 동일시에 빠진 적도 그것에서 나온 적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나는 동일시에서 빠져나와야 해'라는 신념이 의식이라는 바탕 위에 흐름에 따라 떠오른 것 아닐까? 여기에 대해서는 더 경험적으로 질문하며 알아가봐야겠다.
-오늘의 감사
지곡 아주머님께서 오랜만에 보았다고 반갑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