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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힘을 기르기 : 우리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멈추지 않고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빼놓지 않고 행하는 이 지속적인 행동을 통해 마음의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이 꾸준함을 통해 어떤 일이 벌어져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터득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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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관성명상 2일차 학대받음
by 전영지 on 06:42:49 in 일기

 

 

 

관성다루기를 하며 뜻밖에 복병을 만났다.

절대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경험

날 철저히 파괴시키고 불구덩이에 던져 넣은것처럼

지옥속에서 쓰러져가며 죽음의 문턱을 여러번 넘게했던

가장 고통스러운 삶의 치욕

 

깊숙한곳에 꽁꽁 동여매여서 버리고 싶은

나의 가장 치욕적이고 생각도 말로도 떠올리기 싫은

과거의 깊은 상처들

 

지나가 버렸고 이제는 끝나버린 삶의 아픈 유리조각들을 맨발로 밟고 말았다.

 

월인님과 문제들을 다루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말 ' 학대 '

 

난 그말을 가장 싫어하고 떠올리기조차 싫었다.

십년전 " 얘 내가 학대받은거지 뭐니? "

하는 엄마의 말에 얼마나 화득짝 놀랐던가.

놀란 가슴을 쓸어앉고 " 엄마 학대가 뭐야? "

하는 내말에 " 얘 그게 학대가 아님 뭐니? "

했던  엄마의 한탄과 절규에 가까운 말을 듣고

난 정말 어찌 할바를 몰랐었다.

 

그즈음 며느리가 내말에 대꾸도 안하고 손주들도 인사도 안한다고

손주들  인사 한번 받아보는게 소원이라셨던 어머니

나를 사람취급도 안한다며 푸념하시는 말을 듣고도

내가 모시지 있는 입장이 아니라 가슴아파도 참으며 말도 못하고 지냈는데...

그러다 올케가 어머님 서울 안가시면 이혼하겠다는 말이 나왔고

아들4명이 아파트에 살고 있었으나 아무도 모시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사당동 2층 낡은집에 보행장애를 가진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다.

 

내 어린시절 병약한 아버지와 우리5남매 돌보며 장사하시느라

밤잠한번 편안하게 못주무시고 뇌신등으로 밤낮을 안가리고 뛰시느라

일찍부터 고혈압과 고지혈과 뇌경변장애3등급을 가지신 어머니가 안쓰러워서

내가 모시며 어머님께 받은것 10분의1이라도 갚겠다고 극진히 모셨는데...

 

어머님의 " 얘 내가 가는 날까지 날 안전하게 보호하고 보살펴주렴 "하셨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편안하고 즐겁게 여왕마마처럼 해드리고 싶은게 내소원이였다.

 

상처받은 엄마의 아픔을 끌어앉고 내 삶은 내려놓고 엄마의 삶을 덮어쓴채

일주일에 한두번씩 어머니 모시고 극장에도 가고 오페라도 보러가고

백화점과 마트에도 가며 어머님이 즐겁고 행복하게 해드렸고

 

내 친구들은 안만나도 보행이 어려우신 어머니 친구분들을 모시고

일주일에 한번씩 한의원에도 가고 한달에 한두번씩 만나러가고

1박2일 온천 여행과 봄나들이 가을나들이도 가며 즐겁고 행복해들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정말로 행복했었다.

 

그렇게 10년을 모시고 살며 방과후 강사일에 어머니일과 집안일에 아이들 일에

나는 차츰 쇠약해져갔고 4년전 어머님방에서 불이난것을 복구하러

맨몸으로 혼자 먹지도 못하고 잠잘곳도 없어 아들이 잡아놓은 호텔과 모텔을

전전하며 방과후 수업도 게속해야하는 상황이라 긴장하며 힘겹게 뛰었더니

 

내 몸은 다 망가져서 피를 토하고 누워서 꼼짝못하게 되자

"  너는 난 몰라 네가 알아서 하렴. " 하며 어머니는 나를 버리셨다.

남자 형제들은 왜 안나가고 어머니곁에 눌러붙어 있느냐고 했고....

 

그렇게 나는 어머님께도 형제들에게도 버림받고 내동이쳐져서 오갈곳이 없어서

 어쩔줄을 몰라했었다.

 

그런 작년에는 기관지 확장으로 3월달에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색전술을 받은후 수시로 폐출혈이 일어나서 누워서 꼼짝 못하며 병원에 4번을 입원했으며

 내 삶이 허망하고 힘겹게 버티고 산 생명에 의미가 없고 안쓰럽고 버리고 싶어서

 지난 겨울 4개월을 집에서 꼼짝을 못하고 문밖을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산것도 아니요, 죽은것도 아닌 상황에 참았던 분노와 피빛 절규로

안살고싶다고 그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난 학대란 말을 가장 싫어하고  만나기 싫었다.

나는 일순간 놀랬다.

어떻게 그 말이 내입에서 나왔지....

 

' 아! 그랬구나 ...'

알콜중독이던 남편과 살았던 20년 밤에 잠한번 편안하게 자보는게 소원이었던

 그 20년이 죽음보다 못했던 그 삶이 바로  학대였구나...

난 왜 그사실을 철저히 외면하고 꼭꼭 숨기고 깊이 묻어버린걸까? 

 

월인 선생님은 직면하라 하셨다.

그래야 넘어 갈수 있다고 하셨다.

 

이번 생에 마지막을 걸고 마주서야겠다는 용기가 필요했다.

어제 했던 관성명상이라면 해낼수 있을거라는 작은 믿음의 불씨도 생겼다.

 

월인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바람소리 파도소리 우주에서 들려오는 소리인듯한

음악소리를 따라서 들어갔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리라 생각하고 해보기로 마음 먹으며

 

처음 시작부터 나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20년동안 날 아프게 찌르고 처참하게 죽음의 문턱으로 수없이 몰아 넣었던

 

' 학 대 '

 

내나이 32세때 여고3학년때 공부하다 찬바닥에 엎드려자서 찾아온 안면마비와

초년시절 아는 오빠가 놀이라며 해서 당했던 성추행과 성폭행이

날 남자들을 증오하고 경멸하게 했으며 기피하게 했었다.

 

나에게는 유치원아이들이 가장 순수해서 좋았고 결혼안하고 아이들과 살겠다고

유치원에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던 나에게 부모님은 결혼을 강요하셨고

 

착하고 여리고 겁많고 순종적으로 길러진 나에게는 효도를 위해서

그리고 존경하는 법사님께서 말씀하신 보살행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사는것"

이라던 말씀에 심취했고

 

그무렵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 '새 한마리를 도와서 집으로 갈수있게 돕는다면

내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란 시를 생각하며 그 누구라도 상관없다

 

나만 진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내 결혼생화은 편안할꺼라는생각에 

어머님과 오빠와 새언니가 권하시는 남자에게 마음을 열었고

어느곳 하나 마음이 가는구석이 없는 남자였지만 정말피하고 싶었지만

편찮아서 누워계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며 

그것이 못난딸이 할수 있는 최고의 효도라 생각했다.

 

집에서는 남동생의 결혼을 앞두고 누나를 먼저 보낼려고 다급히 서둘렀고

나이가 많은 양쪽집에서는 만난지 두달만에 결혼을 시키게 되었다.

난 그냥 모든걸 내려놓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결혼후 그사람이 일년 365일중에 360일 술을 마시고 주사가 너무 심해서

시댁에 어머님 ,누나네, 동생들까지 모두 기피하는 기피대상 1호라는걸 알았을때는

 이미 큰아이가 잉태되어 있었고 아버지 병환은 점점 위중해지시고 있었으며

 전통적인 한국의 여성인 어머니는 혹시 아버지 놀라시게 되실까봐서

" 여자는 시집가게 되면 그 집귀신이 되는거야 절대 친정으로 돌아오면 안된다. "

못을 밖으셨고 나는 어디다 대고 그말을 입밖에 낼수가 없었다.

 

결혼초부터 의처증이 심했던 남편은 유치원으로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를 했으며

난 불안하고 힘들었지만 ' 아! 이사람이 불안하게 길러져서 그렇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따뜻하게 감싸앉고 안심되게 최대한 상냥하게 대해줬다.

 

 결혼식날 본 시어머니의 불같은 성격을 알게 되며 어려서 부터 받은 상처들로

힘들었겠다 싶어서 이사람을 아이들 아빠로 사랑으로 감싸앉아서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만들어야 겠다는 일념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매일 술을 먹고 와서 빨간 도깨비눈을 부라리며 친정식구들을 다죽이고

나도 죽겠다며 하는 주정과 스스로 도자기 그릇을 깨서 손을 찔러 붉은 피가 철철흐르게 하는  자해를 보며 얼마나 놀라고 무섭고 힘들던지 도망나와서 울며 덜덜떨며 고통스러워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둘째애를 뱃속에 가진 임신 8개원에 당한 무차별적인 폭행으로

온몸이 피멍이 들고 걷어차인 배가 아프고 하열을 하여 유산을 할뻔 하였고

한달동안을 유치원에 출근도 못하고 끙끙 알아누워서 고통스러워했으며

 

그이후에 알콜중독과 당요로 말라가고 기운이 없어지자 칼을 들기 시작했다.

첫번째와 두번째 칼을 들었을때는 웃으며 얼르고 달래서 칼을 빼았을수 있었으나

세번째 바람이나서 날 괴롭히며 집요하게 힘들게 했던 3번째 칼은 와들와들

온몸이 떨리고 경련이 와서 도저히 빼앗을수가 없었다.

이제 내가 그칼을 쥔다면 내가 찔러 죽일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가 치솟아서

내가 스스로 미친것 같았다.

 

그 칼은 방에 있던 딸이 나와서 빼앗었고 그 다음날 그 남자는 반실성한

나를 택시에 태워 강제로 끌고 가정법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이혼 후 자기가 받을 돈을 계산하러 날 끌고 이혼 상담실로 데리고 갔다.

난 그남자가 악마 같았다.

 

그러자조정분과위원은 " 아저씨 지금 이혼이나 재산분활 문제가 아니라 아줌마 좀 보세요, 아줌마가 지금 말도 못하고 저렇게 벌벌 떨고 있는데 이러고 계실때가 아니잖아요. " 하고는 가정상담소를 소개해주었고 결국 가정폭력과 접근금지 명령과 함께 이혼을 하며 20년 공포와 죽음의 늪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그러나 그후에도 마음은 불안하고 편안하지 못했으며 딸과 나는 정신괴치료를 받았다.

그남자는 3년후 지속적 알콜중독과 당뇨 합병증으로 이세상을 떠났다.

그사람이 가고나면 편안할줄 알았다.

 

그러나 큰애 대학교 1학년 마치고 군대에 있을때 작은애는 고3을 졸업하고 난후라

자기 멋대로 자기 좋으대로 살다가 나와 아이들을 팽겨치고 아이들 앞바라기는

나 몰라라하고 간 그사람에 대한 원망과 큰 분노가 올라와서 넘 힘든 고통속에 살다가  3년후 그에게 미안했다, 내가 널 더 이해하지 못해서 그리고 너무 올곧게 바르게만 살아야 한다는 내틀이 강해서 술한잔도 안마시고 너무 심한 알콜중독의 괴롭힘으로 술을 왠수 처럼 생각하는 날 만나서 너두 많이 힘들었겠다.

속좁고 편협했던 나를 용서해라 하고 그를 편안하게 내려놓고 떠나 보냈는데...

 

그 경험들은 전혀 내곁을 떠나지 않았고 내 몸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후로 독서 치료와 EFT, NLP, 배치플라워등으로 치유와 공부등으로

모두 흘려보내고 이젠 끝난일이라 생각했는데...

 

관성 명상을 하며 떠오른 것들을 강한 죽음과 공포였다.

 

학대 받음

빛, 내려놓음, 자유, 평화

 

 폐 검은색으로 꽉참

호흡하며 점점 푸른색과 황금빛으로 변하다가 하얀 치유의 빛으로 바뀜

맑은 바닷물이 폐를 꽉채웠다가 흘러나감

 

몸의 말

사랑해줘, 지켜봐줘, 네가 얼마나 찬란한 빛의 존재인지 알아봐줘

 

난 넘 힘들고 괴로운 모든 과정을 월인 선생님 말씀대로 철저히 마주보고 직면 했다.  통곡과 오열을 깊이 참고 새기며 그리고 이제는 흘려보내는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내몸을 더욱더 사랑해주고 보듬고 지켜보며 내 스스로 빛나는 찬란한 존재로 거듭나는것을 선택합니다.

 

통찰

이 모든 경험과 아픔과 고통이 모든것을 편안하게 내려놓고 번뜩이는 찬란한 빛으로 자유로 평화로 가기위한 과정이였음을 알게 됨에 감사합니다!

 

이제 내 무의식과 큰 나가 알아서 잘해주리라 믿고 감사히 이글을 끝맺습니다.

 

끝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과 직면해서 넘어가게 해주신 월인 선생님게 깊은 감사드립니다! _(())_

 

이 체험을 하고 깊은 숨이 안쉬어졌던 폐가 깊은 숨을 쉬며 편안해졌습니다.

이 관성명상을 하며 아픈발도 나았고 폐도 나아가는 치유의 기적까지 느끼게 되어 너무 신기합니다! 깊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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