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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힘을 기르기 : 우리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멈추지 않고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빼놓지 않고 행하는 이 지속적인 행동을 통해 마음의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이 꾸준함을 통해 어떤 일이 벌어져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터득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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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17일 (2) - 있음 상태로 노래부르기, 나와 대상 모두 존재 상태로 경험
by 신현동 on 01:43:20 in 일기

무지 17일 (2) - 있음 상태로 노래부르기, 나와 대상 모두 존재 상태로 경험



3. 있음 상태로 노래부르기- 노래를 저절로 불러지는 것이 보였다




행동 :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다



경험 : 오늘도 그냥 제자리의 그림자로 있기, 내가 ~하려는 의도 없이 있기 연습을 하였다. 이러한 상태로 노래를 부르는데, 도중에 어떤 생각이었나 느낌에 동일시 되는 순간 삑사리가 나고 흐름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의식의 상태의 변화가 있었다. 그렇게 ‘느낌’에 동일시되면 지금 여기에서 목소리를 내거나, 노래를 부르는 상황에서의 몸의 사용에 대해 조절 가능한 상태에서 벗어난 것 같았고, 또 조절이 불가능해졌다.,


그 일순간에 딱 느낌에 빠져서 통제가 안 되었고 할 수 없었다. ‘나’가 강해진 느낌인 것 같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내가 없는 주체의 상태로 있다가 내가 생긴 것 같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느낌’이 노래를 부르려했다. 느낌이 동일시 되면 동일시된 바로 그 느낌이 노래를 부르려한다. 물론 그렇게 느낌에 동일시되거나 느낌에 주의가 끌려가도 노래는 노래대로 저절로 불러지기는 한다. 다만 이럴 때는 노래부르는 것이 의식이 되지 않아 의식적 조절이 불가능하고 후두부를 누르거나 성대에 긴장이 되기도 하며, 몸과 마음이 제대로 느껴지거나 살펴봐지지가 않는다. 제대로 보이지가 않는다.


~하려는 의도 없이 있기 연습 상태에서는 느낌의 지나감과 흐름 속에서 노래가 저절로 불러지는데, 느낌에 동일시되면 의식이 확 좁아지면서 그 느낌대로 가려고 하게 된다.. 딱히 어떤 잡히는 느낌이랄 게 없이 끊임없이 느낌이지나가는 상태, 흐르는 상태이다가 확 느낌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되면 노래를 부르는 나의 의식의 흐름과 몸의 흐름flow이 끊기고, 느낌에 에너지가 확 실리면서 지금 여기의 노래가 아닌 내면의 느낌에 집중되어 노래 부르는 상황, 성대의 느낌 호흡의 조절, 음의 높낮이에 대한 느낌 등이 덜 느껴지고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이를 알아채고 나서 다시 의도 없이 있기 연습으로, 그런 흐름으로 노래를 시도했다. 이런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면. 저음 때는 처음에 배 아래쪽과 성대 목 코 입 쪽이 두드러지게 사용되던 것에서 고음 때는 그것에서 +로 이마에서 머리통 끝까지 몸 전체가 완전히 다 사용되는 느낌이 들었다. 에너지? 느낌?이 코를 넘어서 위로 가서 머리통이나 이마가 쓰여서 그냥 몸 전체에 사용될 수 있는 모든 부위가 다 사용되면서 몸 전체에서 쩌렁 쩌렁하게 소리가 퍼지는 느낌이 든다.


내가 ~하려는 느낌 특히 ‘나는 노래를 ~게 불러야해’, ‘나는 몸의 호흡을 보면서 노래를 불러야해’, ‘나는 몸의 이런 이런 부위를 사용하면서 부를 거야’ 같은 의도 다 내려놓고 정말 의도 없이, 다만 일어나는 의도를 바라보는 연습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니 그 동안 노래를 부를 때 얼마나 많은 ‘내가 ~하려는 의도’가 수 많은 몸의 사용되는 부위를 다 막아왔는지 느껴졌다. 내가 ~하려는 의도에 동일시 되어 몸을 막지 않으면, 몸은 전체가 사용될 수 있음을, 단지 노래가 성대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머리통까지 포함한 온 몸 전체의 협응에 의한 것임을 온 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지금까지 그러한 의도에 빠져서 몸을 부분적으로 사용하는지조차 몰라왔는지라 이런 경험이 신기하고 생생하게 다가왔었다.


느낌에 동일시 되지 않으면 몸은 언제나 전체로 함께 사용되는 것 같다. 굳이 의도적으로 머리나 이마쪽으로 소리를 울려퍼지게 해보려고 했던 것보다도 훨씬 시원하고 전체적으로 발성이 쓰인다. 그런 것을 보면 어느 한 부위만을 쓰려고 하는 것도 다 인간이 개념과 관념으로 몸을 부분적으로 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 만들어낸 이론이 아닌가 생각된다. 몸이 통합되지 않아서 부분적으로 쓰이는 것은 ‘느낌’이 막아서, ‘동일시된 느낌’에 막혀서 사용이 안되는 것이지 오히려 더 의도를 내어서 더 그런 의도의 느낌에 빠져서 그 부위를 사용하려고하면 역효과가 나고 긴장만 가중되며, 사용된다하더라도 통합적 사용이 불가능하다. 그 부위의 근육이야 강화되겠지만, 그 부분만 의도적으로 통합이 단절된 상태인 것은 여전히 동일하며, 무엇보다 통합되지 않으면 몸의 그 부분은 ‘쓰지’못한다. 통합이 되어야만 몸의 전체 부위를 ‘사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몸의 해당 부위의 근육의 ‘강화’가 아닌 ‘연결’이며 ‘통합’이며 ‘조화’이다. 강화는 말그대로 튼튼하게 하는 것인데, 이는 연결과 통합과는 무관하여 때로는 역으로 통증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쓰다보니 갑자기 몸의 얘기로 빠졌는데, 다시 의식 얘기로 돌아와야겠다. 아무튼 의도 없이 그냥 있는 상태에서는 내가 노래를 부르지 않고 그저 불러지는 것인데 이것이 지속되다보니 문득, 본다는 느낌 없이 보여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관찰할 때는 ‘내’가 대상을 ‘본다’는 ‘느낌’이 있었고, 사실 관찰하는 그 ‘느낌’이 있었다. 뭔가 집중된 느낌이면서도 ‘바라보는 듯한’ 느낌, 그래서 거리감이 들 정도로 멀리 떨어져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본다는 느낌 없이 보이는데, 그저 알아차려지고 보여지고 느껴지면서 하나가 된 듯한 상태였다. 나와 노래방이라는 공간이라는 대상과 노래와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이 되어 전체가 하나가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흘러간다고 표현하는 것이 그나마 그 경험에 가까운 표현 같다. 이것은 분명 빠져있는 것이나 몰입과는 달랐다. 그것은 뭔가 몰두되고 뭐가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그 대상에만 에너지가 쓰인다면, 이 상태는 모든게 보여지고 느껴지고 나라는 것이 딱히 없이 그냥 주체 같은 것이 혹은 존재로서 그냥 어딘가에 있으면서 ‘노래 속에’, ‘노래방 속에’, ‘만물 속에’ 경험되는 모든 것 ‘속에’ 있었다. 이것이 뭔가 지금까지 연습하면서도 드문드문 느꼈던 상태 같지만 깊이 지속적으로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상태에서 이 존재는 모든 것 속에 녹아있는 듯 했다. 보여지고 알아차려지고 느껴지는 그 안에 있는 듯 했다.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 울컥하고 슬픈 감정이 크게 몇 차례 왔는데, 아마 메타몽님 일기에 따라 생각해보면 단순히 뭉친 느낌이 풀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또는 내 생각으론, 뭉쳐져있던 몸의 긴장, 뭉쳐져 쌓여있던 마음의 과거 경험의 느낌들이 풀리면서 일어난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런 느낌이 올라온 것 마저도 그냥 알아채기만 하고 지나보낼 수 있었기에 더더욱 몰입이나 빠진 상태는 아니었고 그와는 달랐다.

이는 관찰한다거나 본다는 느낌 없이 보이고 정확히는 그냥 ‘함께 하는 것’ 같다. 하나로 함께 하는 듯하였다. 어떤 고정된 느낌이 느껴지는 상태가 아니라 함께 흐르는 듯하였다. 모든 느낌, 현상과 함께 하는 듯하다.


이 상태에선 음정, 박자, 가사 모두 내가 맞추는 게 아니다. 그냥 있음 상태로 있는 것 같다. 나는 보는 자가 아니라 그냥 함께 있는다. 이 몸이 노래를 부르는 것과 함께 한다. 물론 그렇다고 ‘자동으로 부르게 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건 그거대로 그런 의도가 내가 되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한다는 느낌도, 내가 하지 않고 저절로 일어난다는 느낌 조차도 없이 그냥 있을 뿐이다. 그냥 흘러가고 느낌들이 지나가고, 느껴지고 알아차려지고 경험될 뿐이다. 이제와보면 최근에는 그냥 있기 연습을 하는 셈치고 ‘내가 하지 않고 저절로 되어지는 느낌’, ‘모든 것이 자동으로 되는 느낌’, ‘내가 하는 게 없는 상태의 느낌’ ‘내가 하지 않는다는 느낌’ 을 또 추구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통찰 : 의식의 상태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내가’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또 노래가 저절로 알아서 불러지는 경험과 그저 함께 하기도 한다. 몸이 노래를 부르는 것과 그냥 함께 한다. 노래의 경험 속에서, 노래가 들리고 노래를 부르는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의 흐름이 되어 나는 그저 알아차림 속에서, 느껴지며, 보이며, 그냥 있다. ‘나’가 명확하게 서 있는 느낌보다는 그냥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다. 평상시보다 큰 스피커 소리와 마이크 소리 때문에 같은 연습을 하더라도 조용한 일상에서 보다는 느낌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앞으로는 조용하고 평범한 일상에서도 이런 상태가 가능한지, 더 탐구해볼 것이다.




4. 나와 대상 모두 존재 상태로 경험

- 있음 상태 연습




행동 ; 집까지 길을 걸었다.



경험 : 의도 없이 있기 연습을 하면서 길을 걷는데 대상을 보고 경험하는데 문득 감지 연습할 때와는 다른 차원의 느낌이 들었다. 형태, 질감도 딱히 주의를 의식적으로 기울이며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런지 강하게 느껴지지 않고, 대상에 대해 그냥 ‘있다’, ‘있는 느낌’ 정도로 느껴졌다. 딱히 어떤 느낌이랄 것이 없는 상태인데, 그러나 분별은 다 해서 강아지를 보고 저절로 피하게 되고, 자전거를 피하고 숫자를 읽고 스마트폰으로 메모를 한다. 모든 대상의 느낌이 존재차원에서 평등하되 분별은 되며 끌림과 밀침이 평상시보다도 많이 줄었고 감지 연습과는 또 분명히 다른 상태였다. 사실 끌림까진 아니지만 끌림 직전까지 느낌이 확 일어나서 가려고 하긴 했으나, 가진 않았다. 무언가 존재의 기본 상태, 아주 잔잔한 파도랄까 저 아래의 차원의 상태 같았다. 파도가 강하게 치고 생각이 많이 일어나며 감정이 소용돌이 치는 것이 표층의 차원이라면 저 심층의 잔잔하고 존재적인 느낌만 드는, 밋밋하면서도 단촐하고 무색 무취의 상태 같았다.


사실 이런 연습을 계속 해오면서 무의식적으로는 느꼈을 법도 한데, 오늘 이렇게 갑자기 의식화되어 느껴진 것은 감지연습과의 대비를 통해서 느껴진 것 같았다. 뭔가 ‘나’의 상태가 평상시의 ‘나’보다는 그냥 주체나 존재인 것 같은데, 그 중에서도 왠지 그냥 존재차원의 느낌이 아닐까 싶다.

이 상태가 되는 방법은 ‘그냥 있으면’ 된다. 한 번 의식하고, 그냥 있기. 그래서 있음 상태 연습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통찰 : 있음 상태 연습 시 주체도 대상도 다 그냥 존재차원에서 그냥 있는 느낌만 든다. 분별과 구별은 되면서도 형태나 질감이 뚜렷하게, 선명하게 느껴지지는 않고 그냥 주의가 나가며 모든 것이 있다는 느낌만 든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느낌’이 딱히 잡혀서 생생하게 느껴지진 않고 그냥 다 지나간다. 가볍고 지나가고 흘러간다. 사물들은 여전히 입체로 보이며, 숫자도 읽히고 강아지가 강아지임을 알고,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고 느껴지지만, ‘느낌’의 분별이 형태 질감 차원 아래의 분별같다. 형태, 질감의 분별 아래차원의 느낌이 아닐까? 그냥 대상에 대한 정말 ‘최소한’의 분별기능만 작동하는 듯하다.

이것도 더 연습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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