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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힘을 기르기 : 우리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멈추지 않고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빼놓지 않고 행하는 이 지속적인 행동을 통해 마음의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이 꾸준함을 통해 어떤 일이 벌어져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터득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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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10일 - 내가 아닌 것들, 온전한 믿음을 통한 사랑
by 신현동 on 02:16:46 in 일기


주제 : 제자리의 그림자로 있기 연습


1. 내가 아닌 것들



행동 : 학교를 걸었다.


경험 : 학교를 걸으며 제자리의 그림자로 있기 연습을 늘 하듯이 하는데, 이제는 이 상태가 될 때가 있고 안될 때도 있음을 아니까, 그 말은 즉슨 지금 이렇게 투명한 주체의 상태 조차 진정 내가 아니라는 것이 조금 더 와닿았다. 일단 이러한 주체가 느끼는 모든 대상은 전부 느낌이고 나라는 것도 불투명한 뭉친 느낌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늘 막혔던 것은 이렇게 보고 있는 주체는 어떻게 내가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지금 이렇게 주체가 명확하게 있는 와중에도 이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지금 이 순간에 있을 뿐이며 임시적인 것임을 지난 기간 동안의 연습을 통해 경험이 쌓여서 무의식적으로도 안다.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그래도 항상 뭔가 있는 것 같은 투명한 느낌, 느낌으로 잡을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항상 보고 있는 이런 주체, 이것조차도 임시적이라는 것에 점점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믿음이 기울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말씀으로도 책으로도 내가 아닌 것들을 하나 하나 다 지워보라고 하셨고, 그렇게 모든 아닌 것들을 통해서 그것이 드러난다고 하셨던 것 같다. 내가 아닌 것들을 치워 나가다보면 진정한 나만이 남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 당시는 사실 별로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지금 이렇게 명확하게 주체 행세를 하는 이것조차 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야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이것마저 내가 아니라고 했을 때 남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내가 아닐까 뭔가 감이 올듯 말듯 했다

지금 이런 주체-대상마저, 부정할 수 있을 때 남는 것,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명확하게 대상으로 볼 때, 그 ‘눈’을 직접 느끼지 않아도 보이는 대상이 ‘대상’임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

통찰 : 지금 이렇게 드러나 있는 투명하며 직접 느낄 수 없는 이런 주체조차 대상과의 관계에 따라 ‘나’로서 강화되기도 하고, 투명하게 주체로 있기도 하다. 즉 대상과 함께 가변하는 임시적 현상이다. 현상으로서의 주체조차 진정한 내가 아니다. 나라고 알고 있는 이런 의식조차도 내가 아니고, 느껴지는 모든 대상도 내가 아니다.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모든 것은 느낌이며, 현상으로 나라고 할 수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는 무엇일까?



2. 온전히 믿음을 통해 사랑하기



행동 : 지하철에서 매화를 떠올렸다


경험 : 오늘 매화를 떠올렸는데 내가 그 동안 매화에게 100% 온전히 믿음을 주지 않았음을 알았다. 사실 그 사람이 떠날까봐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해왔고 믿어왔다. 왜냐하면 이렇게 마음 한 켠에 그 사람이 언제든 나에 대한 마음이 변해서 떠날 수 있다고 믿어야 실제로 떠났을 때 받는 상처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늘 항상 가슴 한 켠에 보험을 들어놓는 것이다. 대비를 해놓고, 방어책, 대비책을 세워둔 것이다. 여지를 남겨두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배신을 겪거나 믿음을 저버렸을 때, ‘역시 그렇지 사람 마음은 다 변하지’ 하는 그 마음으로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배수진을 친게 아니라 도망갈 틈을 남겨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아킬레우스가 아킬레스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불사의 물에 닿아 그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지만 유일하게 물에 닿지 않은 부분은 불사가 아니어서 약점으로 작용하여 결국 그 부분에 공격을 당해 죽듯이 100% 온전히 상대에게 내맡기지 못하고 상대에게 젖어들지 못한 부분으로 인해, 즉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그런 불신의 생각과 불안으로 인해 그 상대방에게 100% 사랑을 다 주지 못하게 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나를 온전히 전부 내맡기는 사랑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막아서 결과적으로도 그 불신으로 인해 사랑이 끝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도망갈 틈을 남겨두고, 상처당할 것을 대비하여 자기를 방어하며, 그만큼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만 사랑하여 거기에 매몰되는 나르시시즘, 이기주의가 상대에 대한 온전한 사랑, 무한한 사랑을 막는 요소이며, 이것이 사실 사랑의 가장 큰 장애물이자 걸림돌이다.

그러니까 역설적이게도 사랑의 장애물이 다른 이성이나, 다른 존재가 아닌, 자기 자신을 방어하려는 마음,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 자기 자신을 사랑하여 거기에 매몰된 마음, 이기주의적인 마음, 자기를 보호하려고 하는 그 마음인 것이다. 자기를 지키려고 하는 마음에 에너지가 쓰이면, 나를 방어하기 위해 방어기제를 형성하고, 그러면 상대방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랑을 100%다 하지 못하고 여지를 둔 채 5~60%정도만(예시) 사랑할 테고 그렇게 되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온전하게 나를 녹이고 나를 내맡기는 사랑이 아닌, ‘적당히’하는,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하나가 되지 못하고 둘로서만, 분리를 넘어가지 못하는, 제한적 사랑을 하게 된다. 그와 진정 의식 안에서 마음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없다. 끊임없이 나를 지키려고 하는 그 마음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진정 상대를 위한 사랑이 아닌 ‘나’를 위한 사랑이 될 가능성도 있고, 그래서 내가 상처받거나 내 욕심을 못 채우거나, 내 뜻대로 안되면, 상대방을 위한다는 말만 남은 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게 된다. 이런 자기 방어적 사랑은 자기를 위하는 데에, 자기를 방어하고 지키는 데에 에너지가 쓰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온전히 상대방을 다 사랑하지 못한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자기를 위한 사랑은 자기라는 기준에 따라서 자기의 기준에 충족되면 사랑하게 되고 충족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조건적 사랑을 하게 되고, 사랑에 대해 한계를 두게 되고 한정적 부분적 사랑만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의식화시키고 알아도 나는 매화에게 온전히 믿음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과거의 상처를 또 겪을 까봐 걱정하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여전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지금 내 마음을 보니 조금 달랐다. 이제는 그 상처받는 느낌, 버려진 느낌, 절망과 슬픈 느낌이 진정 ‘느낌’임을 어느 정도 안다. 그것이 영원하지 않고 지나가며, 그 느낌이 있다고 해서 ‘내’가 상처받는 것이 아니다. 상처받는 느낌이 ‘나’같을 뿐이다. 내 안에서 그것이 일어나고 느껴진다고 해서 ‘내’가 상처받는 것은 아니다. ‘나’라고 하는 것이 어떤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님을 느껴갈 수록, 나에 대해서 가벼워진다. 나라고 하는 것은 대상과 함께 작용하는 구조의 틀이다. 나-대상의 구조로서의 하나의 틀이다. 임시적 틀이라 고정된 존재는 아니다.

따라서 지하철에서 현재의 마음 상태로 이 사람을 정말 한 번 믿어보자, 정말 100% 믿어보자 라고 의식적으로 반복해서 되뇌이며, 나를 100% 온전히 그에게 내맡기는 마음을 품어보았다. 그렇게 하니 매일 100% 다 믿지 못하는 마음으로 인해 늘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가슴 한켠으로 불신하여, 마치 절벽 낭떠러지 끝에서 조마조마하게 위태롭게 살았던 느낌에서, 아예 낭떠러지 끝으로 밑으로 온 몸을 내던지는 이미지가 떠오르고 아무것도 없는 그 끝없는 심연으로 내던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내 몸을 다 내던지고 나니 무중력이었고, 오히려 무한한 공간, 하늘 위로 두둥실 떠오른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붕 뜬 느낌이 들고 자유로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 간 뭔가 막고 있고 꽁꽁 싸매고 있던 느낌이 풀려난 것 같았다. 흡사 통찰력 게임에서 깊은 사랑을 느끼거나, 통찰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몸에서는 가슴 양 젖꼭지 사이의 흉골 쪽에서, 명치 윗부위 뼈가 만져지는 부위에서 가슴이 활짝 환하게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시원했다. 단지 의식적으로 상대방을 100%온전히 믿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 마음을 품은 것만으로도 이렇게 느낌이 분명하게 일어나서 느껴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믿어야지 라고 스스로 외친 부분도 있지만, ‘그 동안 믿지 못했던 불신과 불안을 내려놔야지’, ‘이제는 상처받고 아파도 괜찮아 그걸 견딜힘이 있으니까.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그것이 찾아와도 온전히 존재로서 있을 수 있으니까. 그게 날 전부 집어삼키지 않으니까. 그걸 넘어가고 이겨낼 힘이 있으니까’ 하는 마음이 있었고, 무엇보다 내 안에서 스스로 내 마음을 제한하고 막고 있던 것을 의식화시켰고, 그것들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것이 과거에는 옳은 신념, 생각이었다 해도 지금은 그것이 아님을 명백히 알고, 지금은 상황이 다르고 지금은 대상이 다르다. 이 사람이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다. 물론 믿을 만한 근거가 있어서 그런 것도 가능했겠지만, 내가 내 안에서 나를 지키려고 하는, 방어하려고하는 그 마음을 적어도 매화에게 만큼은 포기하고 믿고 다 맡겨보고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온전히 100% 몸과 마음 모두를 내맡겨보기로 했다. 아까 느낀 가슴의 그런 열리는 느낌 확장되는 느낌은 물론 지나가는 느낌이며, 하나의 경험이다. 그러나 마치 통찰과 같아서 내 가슴에 깊이 있게 새겨진 듯했다. 지나가는 경험과 달리 통찰은 깊숙이 저 먼 곳까지 전달되어 앞으로의 인식체계를 바꾼다. 의식이 변한다.

물론 의식적으로 이렇게 신념을 바꾸고 가슴으로 느낌을 느끼며, 되뇌이고, 지금까지의 과거 신념들을 의식화시켜보고 지금 신념이 무엇인지,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매화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정말 바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 시도해볼 것이다.


통찰 : 두려움과 불안은 내가 상대방을 온전히 믿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 것 같다. 100% 믿지 못하니 끊임 없이 불안해하고 걱정했다. 그것의 원인은 내가 나를 지키려는 마음, 방어하려는 마음, 상처받지 않으려하는 마음, 움츠러들어서 상처받지 않을 만큼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믿는 마음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선 나라고 하는 것이 임시적인 현상임을 조금씩 알아가는 통찰을 통해 나를 지키려고 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 다음으로는 내가 지금 그런 불신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의식화하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내가 100%온전히 믿지 못했음을 의식화하며, 믿어왔던 신념도 의식화해본다. 그리고 새롭게 마음을 품고, 새로운 신념으로 수정해보고, 내 안의 새로운 믿음을 막는 그런 생각들을 하나 하나 다 떠올려보고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확인한다.

단지 상대를 믿어야지에 힘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막는, 방해하는 마음에 힘을 빼고,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아는 것에 더 초점을 둔다. 마치 몸의 근육에 힘을 주고 근력을 강화해서 몸이 안 아파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내 몸을 막고 있는 나의 긴장들을 의식하여 내려놓음으로써, 내가 붙잡고 있는 긴장을 의식하기만 함으로써 몸이 해소되고, 통증이 사라지고 편안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몸에 있어서 지켜봄만으로도 몸이 이완되고 해소되듯이, 마음도 지켜봄만으로도 깨끗하게 다 내려놓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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